만드는 일보다 읽는 일에 집중 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 ‘올바름’Righteousness 에 대해 고민하고 그걸 제품으로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어떤 것을 처음부터 만들 때는 거시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결국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죠.
그래서 정보와 문서를 시작으로 인간이 기록을 시작한 이유와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그냥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식으로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보는 진실과 질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결합할 때 강력한 이야기가 탄생한다
정보를 담는 도구인 문서는 때로 진실과 멀어지거나 권력화되는 한계를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정작용과 스토리텔링을 통한 '끊임없는 생각의 수정'이 필요하다
(오늘 내용이 길다보니 이메일 뷰어 안에 전부 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급적 본문 링크로 이동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보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법 ; 스토리텔링
정보는 진실과 질서로 이뤄져있다는 말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려 한다.
예전에 NHQ(일본 공영방송)에서 일하던 친구가 평범한 진실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단순한 화재 소식은 뉴스가치가 없다. 하지만 ‘화재 현장 바로 옆에 초등학교 있다’는 식의 보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게 가깝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는 인류가 발전시켜온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화재 발생’이라는 건조한 사실보다 이야기로 풀어낸 뉴스가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기도 하다. 진실이 현실성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야기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연결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화재 현장 근처의 초등학교를 언급하려는 기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기사 조회수를 높이려는 것일 수도 있고, 학교 주변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려는 교육 전문기자의 의도일 수도 있다. 이는 기자가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질서)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핵심은, 정보는 진실을 담기도하고 진실과 멀어지기도 한다. 만약 정보와 진실 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면, 이는 정보를 전달하려는 사람이 부여하고 싶은 질서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 때는 모든 과학적인 현상을 신과 연관지어 해석했는데 이는 사제들이 사회에 부여하려는 질서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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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한계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계기로 나라를 세운 사례도 있다. 이스라엘 국민에게 비알릭은 상당히 의미있는 시인인데, 그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키시네프 포그롬)을 목격하고 그 유명한 ‘학살의 도시’를 쓰게 된다. 이 시는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감동시켰고, 결국 시오니즘이라는 강력한 이야기로 이스라엘이라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단지 스토리텔링뿐이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총을 구매하고, 건물을 짓고, 하수도 등의 도시 인프라를 깔기 위해서는 노래나 시보다는 종이와 표가 필요하다. 이런 일에는 영감보다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하며, 노래나 시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포맷이 아니었다.
즉, 정보들을 질서있게 정리하는 목록List 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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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기능
허구의 기억을 재현하며 영감과 감동을 주는 것이 이야기라면, 문서는 그 자체가 현실이다. 만약 내가 10명에게 돈을 빌렸는데 차용증이 없다면, 난 그 돈을 갚을 의무가 없다. 반대로, 누구에게도 돈을 빌리지 않았지만 누군가 몰래 차용증을 만들어냈다면 난 돈을 갚을 의무가 생긴다.
콜레라가 닥쳤을 때 문서는 빛을 발했다. 콜레라가 런던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공기로 인해 병이 전염된다고 믿었다. 이때 존 스노우는 콜레라 사망자들의 주소를 지도에 표시에 ‘점 지도’를 만들었다. 그 결과, ‘브로드 스트리트’의 특정 펌프 주변에 사망자가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해당 유가족들을 만나 사망자들의 물 사용 패턴을 상세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지역을 설득해 해당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하면서 새로운 사망자 수를 급격히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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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라는 새로운 문제
이렇듯, 분명 문서는 실용적이었다. 특히 문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의 문서가 얽혀있을 때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병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바로 검색이었다.
문서는 비유기적 정보를 인간의 뇌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구조적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기억을 떠올리거나 무언가를 유추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여전히 기계적이었다. 인간은 이런 사고에 익숙했다.
열매가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나무가지를 찾아본다. 적색계열의 무언가를 찾는다.
버섯이 필요하면 고개를 숙여 나무 밑을 찾는다. 지나치게 화려한 버섯은 피한다.
이처럼 우리는 생태계가 지닌 유기적 질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책장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문서들을 탐색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이러한 문서들은 유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 법칙을 따르지도 않으며, 진화에 의해 질서있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차용증은 갑자기 하늘에서 열리지 않고, 누군가 작성해서 책상 위에 가져다두어야 한다. 사실 모든 문서가 그렇다. 때문에 인간은 책장 별로 분류 기준을 정하고 어떻게 정렬할지 결정해야 했다.
이때, 숲의 질서에 따라 탐색하는 것과는 다르게 문서 탐색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되는데, 이 질서를 ‘관료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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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라는 부자연스러운 체계
유발 하라리는 관료제의 핵심을 ‘서랍’이라 정의한다. 노트 SaaS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제테카스텐 방법론에 관심이 많을텐데, 이는 독일어로 메모상자라는 뜻이다. 대강 아래의 규칙을 따른다.
하나의 메모에는 하나의 아이디어만 작성한다
각 메모에 고유한 ID를 부여한다
관련된 메모를 서로 연결한다
계층 구조가 아닌 네트워크 구조로 연결하기
키워드/태그를 통해 검색하기
위 사진은 제텔카스텐을 컴퓨터로 구현한 모습인데, 보이는 수많은 점들은 하나의 노트를 의미하고, 색상은 작성자가 부여한 태그에 따라 분류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정보의 노트끼리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제텔카스텐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데, 이는 온 세상을 수많은 서랍으로 나누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서랍은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인간이 상호 간의 합의로 만들어낸 기준이기 때문에 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개발자의 번아웃’이라는 문서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이건 ‘개발’, ‘정신건강’, ‘직장생활’ 중 어디에 넣어야할까? ‘프로젝트 관리’라는 서랍에 넣을 수도 있다. 이처럼 현실의 지식은 여러 영역이 유기적으로 얽혀있어 이를 명확히 구분된 서랍에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사고는 자연스러운 연결을 따라가는데는 능숙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분류 체계를 따라가는데는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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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전문가의 탄생
이렇게 문서가 담는 정보량이 많아지자 각 문서는 상당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 복잡한 관계를 해석하고 다시 질서를 부여하는 전문가들이 생겨났다.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들은 현실을 담는 문서와 일했지만 정작 진짜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있었다는 점이다.
2019년 9월 25일 인도 바크헤디 마을에서 달리트 계급의 두 어린아이가 더 높은 계급의 가족이 사는 집 근처에서 용변을 봤다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당했다. 두 아이는 집에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지역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음에도 화장실 건설을 위한 정부 지원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별도의 생활용품을 가져와 떨어져 지내야했다.
이처럼, 관료제에서는 알 수 없는 기관 또는 전문가들의 사인 한 번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망쳐놓고는 했다. 즉, 관료제가 무서운 이유는 위협을 이해하거나 예상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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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문서 네트워크의 비극
1890년 미국에서 인구조사를 위해 강력한 문서 서식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천공카드다. 천공카드는 7년이 걸리던 인구조사를 1년으로 단축시킬만큼 강력한 문서 서식이었는데, 이로 인한 일어난 비극이 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호마그(Dehomag)는 1933년에 나치 정권과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천공카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는데, 개인당 하나의 카드에 60개의 정보(종교, 국적, 직업 등)를 기록한다. 이때, 유대인 여부를 식별하는 코드를 포함시키게 된다.
그리고 인구조사를 실시해 전국민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IBM의 분류기를 활용해 전국민 중에서 유대인을 매주 발라내게 된다. 참고로, 하루 평균 25,000명장의 카드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유대인을 빠르게 추적하고 재산을 몰수하거나 수용소 이송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위의 인도 아이들의 화장실 문제나 유대인 학살에 기여한 천공카드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소유한다고 해서 인간이 전보다 더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량의 증가는 정보의 불투명을 만들어내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권력은 이동된다. 이들은 수많은 진실을 기록한 문서로 원하는 질서를 사회에 부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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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작용의 시작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잘못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시’하고 ‘개정‘하는 절차 또는 기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감시와 개정을 충실히 이행하는 집단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었다.
먼저 과학자들은 관찰을 통한 발견과 발명을 중요시 했다. 관찰을 통한 발견이라는 말에서 이미 인간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자기들끼리 자정작용을 만들어냈다. 나보다 앞선 스승들이 A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공표했어도 수 세기 안에 이는 뒤집힐 수 있었다. 이런 여지는 후대 과학자들을 더욱 불타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결국 이들은 인간은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지하고, 진실에만 집착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종교는 오류가 전무한 문서를 만들어 공표하는데, 대표적으로 성경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해 두 가지 한계에 부딪히는데,
결국 오류가 전무한 문서를 만드는 것도 결국 인간이라는 점과,
수많은 성경의 가르침들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과학자들과 차이가 있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해석하던 랍비들은 질서를 부여하는 것에 집착하느라 진실을 배제했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그들은 진실을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 감염병은 신이 노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병원체가 옮겨다니며 발생하는 것이다. 이 과정 어디에도 신의 개입은 없었다.
하지만 종교 집단이 자정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자정장치는 진실 추구에 있어 필수적이지만, 질서 유지 측면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자정장치는 의구심, 논쟁, 갈등, 분열을 일으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이야기의 힘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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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작용 + 스토리텔링 = 끊임없는 생각의 수정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하는 것은 딱 하나다.
자정작용을 통한 진실추구와 스토리텔링을 위한 질서유지를 병렬적으로 하기
위대한 문서/노트를 남긴 사람들(다빈치, 스티브잡스, 벤자민 프랭클린 등)의 공통점은 ‘끊임없는 생각의 수정’을 인생 전반에 걸쳐 멈추지 않았고, 이를 세상에 공표하는 것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수정하는 자정작용의 가치를 알았으며, 동시에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의 힘도 이해했다. 이러한 메이커들이 남긴 기록들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진실에 집착하는 탐구과정과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담은 이야기에 가깝다.
결국 우리가 노트를 사용해야하는 이유는 끊임없는 생각의 수정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정보 간의 정리를 더 잘하기 위해, 정보 Capturing을 더 잘하기 위해, 내 메세지를 더 멀리 공표하기 위해, 순간 떠오른 영감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는 생각의 수정을 위해서는 아래와 같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유추하기 : 뉴턴은 사과의 낙하와 달의 궤도를 연결지어 중력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음.
반대 주장과 근거찾기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일부러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고 가정하고 반대 증거들을 철저히 찾아봤다.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이론이 더 견고해졌고, 예상치 못한 통찰도 얻을 수 있었음.
A를 이루는 구성요소 찾기 : 다빈치는 새의 비행을 연구할 때 깃털의 구조, 근육의 움직임, 공기의 흐름, 무게중심의 변화 등 비행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분해해서 연구.
유사성 발견하기 :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진화론의 핵심개념을 발전시킴.
옵시디언, 롬 리서치, 리드와이즈와 같은 제품은 무한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정보 과잉과 주의력 분산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때문에 진실추구에는 유리하나, 스토리텔링에는 불리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더 인간의 생리대로 작동하고, 진실과 질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노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안녕하세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질서와 진실 두 축으로 나누어 정보를 해석하는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의 연결, 편집, 확장 등이 ‘노트를 중심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개인의 지적역량의 표출이 노트로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마다 활용체계가 조금씩은 다릅니다. 제텔카스텐 또한 채택 및 활용할 수 있는 누군가의 방법론 중 하나라고 느낍니다.
결국 지적행위의 본질은 생각에 질서를 부여하고 관계짓는 일인 것 같습니다. 관리자 성향과 정리정돈 욕구가 강한 저도 note taking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시중의 도구들이 최선인 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인터넷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생각을 잘 버무릴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자료로 만드는 것을 돕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옵시디언의 네트워크 구조가 어떤 의미를 주는 지 아직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디렉토리(트리) 구조 속에서 태그를 활용해 자유롭게 사고 횡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더 이야기 나눠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