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눈이 오면 출근길을 걱정했었는데, 눈싸움을 하며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니 신선함을 느낍니다. 저는 요즘 갑작스럽게 주어진 많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준 폴 그레이엄의 에세이를 번역해봤습니다.
Wooden Ships - Crosby, Stills, Nash & Young
2010년 7월 1일,
1988년에 스타트업을 매각하고 우리는 갑자기 돈방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돈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부자도 언제든지 가난해질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언제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가난에서 부자가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부자가 가난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걸 피하려면 어떤 길로 가면 안되는지 알아야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재산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부자들이 과소비로 인해 가난해진다고 생각했는데요, 실제로는 과소비보다는 잘못된 투자(Bad Investment)로 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내 재산을 나도 모르게 전부 소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와, 나 지금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없이 수만 달러를 쓰는게 힘든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파생상품 같은 것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백만 달러를 날리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치품에 돈을 사용할 때 머릿속에서 일종의 경고음이 울립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큰 금액을 투자할 때는 그렇지 않죠. 사치는 자기만족처럼 보이니까요. 그리고 상속이나 복권으로 돈을 번게 아니라면, 이미 자기만족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투자할 때는 이런 경고음이 없습니다. 돈을 쓰는게 아니라 그저 한 자산에서 다른 자산으로 옮기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래서 비싼 물건 파는 사라들이 “이건 투자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해결책은, 새로운 경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쉽지 않은데, 괴소비를 막는 경고음은 너무 기본적으로 우리 DNA에 있을 정도지만, 잘못된 투자를 막는 경고음은 의도적으로 배워야하고, 때로는 상식과 반대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며칠 전 흥미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도 돈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위험한 방법은 노는 데 사용하는게 아니라, 가짜 일을 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놀면서 시간을 보내면 적어도 내가 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금방 경고음이 울리죠. 제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TV만 본다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소파에서 TV를 2시간만 봐도 불편할텐데, 하루종일이라니요.
하지만 살다보면 실제로 TV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날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하루가 끝났을 때 무언가 일을 하기는 했는데, 뭐 했지? 싶은 날들이요. 이런 날은 찝찝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하루종일 TV를 본 만큼 찝찝하지는 않습니다. 하루종일 방탕하게 살았다면 제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 텐데, 겉보기에는 진짜 일처럼 보이는 것들을 했으니까요. 이메일 처리 같은 일이요.
결국 시간도 돈처럼 똑같습니다. 예전에는 '노는 걸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수천 년 전 인류가 사냥하고 채집하던 시절이나 공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걸로 충분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또 자라면서 '너무 즐기면 안 돼'라고 배웠죠.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가장 무서운 건 '이건 의미 있는 일이야', '이건 해야 하는 일이야'라며 우리를 속이는 새로운 시간 낭비들입니다. 진짜 일인 척하면서 우리의 경계심을 피해가죠. 게다가 가장 최악인 건, 이런 것들이 시간만 잡아먹지 즐겁지도 않다는 겁니다.
나만의 경고 시스템 만들기
글에서 PG가 언급한 경고 시스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전 ‘나만의 의사결정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경쟁이 과열되면서 사람들이 불안에 의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나만의 의사결정 가이드에 기반해 불안에 의한 의사결정이 아닌 필요에 의한 의사결정을 더 많이 내려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다들 추운 날씨에 몸 조심하세요 :)
출처 : https://paulgraham.com/selfindulgence.html